종묘에 들어서면 먼저 색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건물이 단청으로 화려한 것과 달리 종묘의 정전은 붉은 기둥과 검은 기와, 흰 돌기단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것은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도된 것입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공간은 화려함이 아니라 엄숙함으로 채워야 한다는 유교적 원칙이 건축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예요.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 남은 것은 길이와 반복인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정전이 유난히 긴 이유는 처음부터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세워지고 왕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신주를 모실 방(신실)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건물을 옆으로 이어 붙였어요. 태조 때는 일곱 칸이었던 것이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열아홉 칸이 됐습니다. 위로 높이거나 새 건물을 짓지 않고 옆으로만 늘렸기 때문에 지붕선이 한 방향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형태가 됐고, 이 수평선이 종묘를 다른 어떤 건축과도 다르게 만듭니다.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인 종묘제례와 거기 쓰이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은 별도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라 있습니다. 건축물이 세계유산이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의례가 무형유산인 셈인데, 이 둘이 함께 남아 있는 사례는 드물어요. 제례악은 조선 초에 정비된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매년 정해진 시기에 실제로 봉행됩니다. 방문 시기가 맞으면 의례 장면을 볼 수 있지만, 평소에는 비어 있는 넓은 마당과 긴 건물만이 남아 있어요.
종묘는 관람 방식이 조금 특별합니다. 훼손을 막기 위해 시간제 관람 해설을 운영해 왔고, 정해진 시각에 해설사와 함께 들어가는 방식이 기본이었어요. 다만 요일에 따라 자유 관람을 허용하는 날도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창덕궁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 두 곳을 잇는 궁궐 담장길이 복원돼 있고, 시간이 있다면 창덕궁 후원까지 묶어 반나절 코스로 도는 방법도 있습니다.
